공지 | [언론기고] 잇따른 교사들의 죽음과 '교·사대 교수들'의 책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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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따돌림 사회연구모임
- 작성일 : 23-09-0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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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은 왜 조용히 죽어가는가(전소연).hwp (77.5K) 15회 다운로드 DATE : 2023-09-08 14: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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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현장] 잇따른 교사들의 죽음과 '교·사대 교수들'의 책임론
전소연 따돌림사회연구모임 회원/ 경기 안양 귀인초 교사
http://www.edpl.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50
<교사들은 왜 조용히 죽어가는가!: 배후를 밝힌다>
따돌림사회연구모임 전소연
최근 초등교사 2명에 이어 9월 3일 용인고 교사가 또 삶을 던졌다. 참담한 교육 현실 속에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교사들이 하나둘 쓰러져 가는 것을 보면서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현재 교사들의 심리상태는 매우 위급한 상황이다. 초등 커뮤니티 인디스쿨에는 극한 우울감을 표현하는 글들이 수도 없이 올라오고 있다. 수면장애를 호소하거나 혹시 몰라 미리 유서 써보았다는 사람들도 있다.
교사 담쟁이는 자신이 지금 죽는다면 그것은 교육부 때문이라는 것을 알려달라고 글을 남겼다. 그는 “나는 아무 문제가 없는 지극히 평범한 교사다. 그러나 지금 신기하게도 앞서 돌아가신 선생님들과 다르지 않은 마음 상태에 도달했다. 다 죽어가는 교사들에게 불법과 처벌 운운하는 교육부의 모습을 보니 숨이 막힌다. 교육부가 오래된 녹슨 칼을 한번 휘두르니 그 이하 관료들이 징계가 두려워 교사들을 조직적으로 억압하고 있다. 그 모습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마음이 싸늘해진다. 다 포기하고 싶다.”라며 무력감을 표현했다.
그렇다면 교육부 장관 한 명만 사퇴하면 될까? 과연 누가 교육 현장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교사들을 사지로 몰고 있는가? 웹툰 작가, 교육부 사무관, 카이스트 학부모, 매일 새롭게 나타나는 공분의 대상들이 그 주범일까?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뭐가 문제야? 난 남들처럼 한 건데. 왜 나한테만 그래? 시켜서 한 건데.” 홀로코스트의 주범인 아이히만도 그렇게 말했다. 한나 아렌트는 이것을 ‘악의 평범성’이라고 하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성실하게 악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사유하지 않고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공교육을 짓밟고 있었다.
우리는 이들이 악을 행하고 있는 큰 체스판을 보아야 한다. 지금의 교실은 교사와 학생이 죽어가는 곳이 되었다. 이제는 잠자는 아이, 무기력한 아이 때문에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교실 붕괴’를 넘어서 이기심과 폭력과 같은 반교육적 가치를 배워가는 ‘교실 해체’에 이르렀다. 교실 해체는 신자유주의적 수요자 중심과 자유주의적 학생 중심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학부모는 학교에 부당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교사의 지도를 거부하기 시작했으며 악은 점점 평범해졌다.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바로 교실 해체의 거대한 판이다.
교실이 해체되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자.
한 아이가 문제 행동을 일으킨다->교사는 문제 학생을 지도하지만 따르지 않는다->교사는 문제 학생의 학부모를 상담한다->학부모는 담임교사의 지도에 비협조하고 오히려 불만을 제기한다->교사는 문제 학생 생활지도의 한계에 부딪힌다->문제 학생이 다른 학생들을 괴롭힌다->문제 행동을 따라 하는 학생들이 생겨난다->다른 학생들의 불만이 쌓이고 교사를 탓한다->교사는 고립된다->교실은 엉망이 된다.
이것은 교사 한 개인이 무너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때 교사들은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한다. 관리자는 자신이 아무 힘이 없다고 주장하고, 동료 교사들은 각자의 업무와 싸움으로 지쳐 쓰러져있다. 우울감과 무기력감 그리고 좌절감의 바탕 위에 외로움이 더해진다.
그런데 그 끝에서 교사들은 왜 모든 것을 안고 가야 했을까? 교사들은 왜 죽는 순간까지 교사답게 죽어갔을까? 더는 못 참겠다며 추모 집회를 하고 떠나는 교사들의 뒤에는 쓰레기는커녕 먼지도 없다. 왜 다를까? 왜 다르고 싶어 할까? 교사들은 자신들이 감정 노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성직자 윤리를 새기고 있다. 뿌리 깊게 주입된 성직자관은 높은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한다. 사랑과 희생을 실천해야만 한다는 마음은 어느 순간 부적절한 죄책감으로 바뀐다. 이것이 거대한 체스판 위에 입혀진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다. 마지막 순간에 교사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독약과 같은 배후이다.
“선생님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교사는 도덕성이 높아야 하고 이타적이어야 한다는 신념은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 아이들의 자존감과 감정은 중요하지만, 교사의 자존감과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잘못일까? 이는 예비 교사 양성 과정의 실패를 의미한다. 제자의 죽음 앞에서 교대 교수들이 성명서를 냈지만 정말 현실을 제대로 직시했는지는 의문스럽다. 개인주의적 인권에 경도된 교육론은 현재 교대와 사대를 지배하고 있다. 학생의 인권과 학습권에 비해 교사의 기본권과 교육권은 부차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교수들은 인권을 앞세운 교육론을 주입한 것을 사과해야 한다. 이 때문에 교사들은 그동안 참고 견디기만 했을 뿐 저항하지 못했다. 이제는 인권이 중심이 되는 자유주의 교육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로 어울려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공화주의 교육론(콜버그의 정의공동체 교육론)으로 프레임을 바꾸는 것만이 선생님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길이다.